역사적 화해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의 148번째 생일인 일요일 서울 남부 국립묘지에서 이승만과 오스트리아 태생의 아내 프란체스카가 함께 묻힌 고요한 장면이 펼쳐졌다. 대학생 시절인 1961년 4·19 대대적인 4·19혁명 당시 50여 명이 ‘독재자’ 전직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들은 63년 전 역사적인 화해를 상징하는 고인이 된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무덤 앞에 헌화했습니다.
여기에는 서울대학교(SNU) 명예교수 이인호;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김&장 법률사무소 이재호 변호사;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모두 80대.
사우스플로리다대 정치학과 1학년 때 시위를 주도한 이영일 전 의원은 “중대 결함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정부 구성을 조직”한 건국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국전쟁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경제발전과 국가안보의 기반을 다졌다”고 말했다. 손병두 전 KBS 이사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 꿈과 4·19 세대의 공정한 선거제도 요구가 상충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놀라운 수렴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의 양자인 김 전 대통령은 19일 서울 북부 민주화운동 묘역에 참배하려 했으나 반대파의 거센 반발에 못 이겼다. 그는 아버지가 민주화운동가들을 가혹하게 탄압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 했으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MPVA가 가칭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결정한 이후 화해는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박민식 국토교통부 장관은 초대 대통령의 생일을 맞아 12년 집권 기간 동안 독재정권과 상관없이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체부는 장관급으로 격상되는 6월 새 대통령 기념관의 위치를 고시할 계획이다.
중국임시정부의 건국수반으로서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투신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이끈 인물이다.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하여 민주화운동 선생들의 옛 인연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욱 빛내주길 기대합니다.
(끝)